꽤 오랜 시간을 달렸다. 소리를 쫓고는 있지만 갈수록 지쳐서인지 올바른 곳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어디 있는 거야, 여기에 있기는 할까? 없으면 어쩌지? 의심은 불안을 낳고 그 몸집을 불렸다. 거대한 불안에 잡아먹힐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덜컥 겁이 났다. 숲은 전보다 더 거대하고 어둡게 느껴졌다. 지쳐있어서 더 그랬다. 어디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을 때
수풀을 걷자 작은 공터와 앉아서 쉬기 좋아 보이는 나무 그루터기가 기적처럼 나타났다. 그루터기는 어서 앉아서 쉬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한걸음 그루터기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다친 무릎은 더욱 아려오고 달리느라 지친 다리도 무거워졌다. 그루터기는 넓었고 앉기에도 좋아 보였다.
이미 울음소리는 숲 저 멀리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루터기에 앉으니 당기는 다리도 아리는 무릎도 눈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가 종아릴 타고 흐르면서 흙과 먼지, 나뭇잎 조각 등이 붙어 더러워진 무릎을 털어내는데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냥 하염없이 온갖 생각들이 흘러나왔다. 피를 타고 하나둘 흐르는 생각들이 어디까지 갈까 가만 바라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쳤구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언니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을처럼 타는듯한 붉은 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반짝이는 눈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언니가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내가 아픈 건 다 지워줄 수 있는데 무릎 좀 보여주겠니?”
목소리에 홀린 것처럼 무릎을 내보이자 언니는 어디선가 손수건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젖은 손수건인 듯 차가운 느낌이 잠시 들다가 서서히 미지근해질 무렵, 손수건이 치워졌다. 그리고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언제 다쳤냐는 듯 멍과 찢어진 상처, 흘러나왔던 피까지 모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매끈한 본래의 피부로 돌아온 무릎이 너무 신기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는데 순간 머리를 스치고 가는 이야기.
‘그 숲에 마녀 말이야. 아픈 것도 다 고친다네?’
‘얼핏 듣기로는 붉은 머리에 미인이라며?’
그녀다. 숲의 마녀.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 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나는 무작정 그녀의 망토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언니, 언니가 이 숲에 사는 마녀죠? 소원을 이루어주는 빨간 마녀.”
이반,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어.
스토리텔러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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