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이반은 식탁에 앉으면서 도저히 못 믿긴다는 듯 좌우를 둘러봤다. 평소 같았으면 이반 혼자 앉거나 이사벨과 같이 저녁을 먹었을 일이었다. 살짝 군내가 나는 차가운 스튜와 딱딱한 빵. 그리고 뒤에 이사벨이 받침대를 딛고 올라서서 프라이팬과 계란으로 씨름하는 풍경. 그런 것이 평소에 이반의 저녁식사였다. 그러나 지금 이반 앞에 있는 것은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 대접에는 향긋한 토마토 향과 소고기가 가득 올라간 스튜. 그 옆에 놓인 바게트와 치아바타는 오늘 빵집에서 바로 구운 듯 구수한 냄새가 났다. 그것 말고도 평소 못 먹었던 요리들이 보였다.
이반은 바로 앞에 있는 파스타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이반에게 파스타는 별미였다. 주에서 시행하는 저소득층 주니어를 위한 주말도시락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도 차갑고, 소스랑 면만 있는, 그런 거였는데.’
이반은 물끄러미 이사벨 쪽을 쳐다봤다. 이사벨은 마냥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도 반가웠다. 아주 어릴 때 남은 기억들이 지금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소소하게 일상을 얘기하면서 따스한 음식을 나눠먹는 오후 6시 저녁식사. 그걸 준비하기 위해 이사벨은 졸래졸래 어머니 손을 잡고 식료품점, 빵집, 마트를 돌아다니곤 했던 그때. 이사벨은 추억의 복귀를 기뻐하며 의자에 앉았다.
가족들이 다 자리한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오른팔 옆에 둔 성경책을 펼쳤다.
“자, 그러면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허용해주신 주님께 기도를 올리자꾸나.”
“네!”
“네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이사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반만이 실눈을 뜨고 그들의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따라했다. 이반은 손을 여러 방면으로 잡아봤다.
“이반? 이렇게 잡는거란다.”
아버지는 자신의 손을 풀고 상체를 내밀어 이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반의 기도를 교정해주었다. 깍지를 낀 두 주먹. 이반은 아직은 어색한 자신의 손을 잡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온 식구가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한 아버지는 기도문을 읊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이사벨과 이반이 이 자리 앞에 앉았습니다. 매일을 주님과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살게 해주시고, 악인으로부터 멀리 하는 삶 살게 해주소서.”
그 뒤로도 아버지는 연설단에 선 사람이라도 된 듯 기도했다. 어머니도, 이사벨도 진심을 다해 그 기도문에 부응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이반은 지금 자리가 전기의자에 앉은 듯 괴로웠다.
“자! 이제 식사합시다. 아멘!”
이때, 이사벨은 누구보다 힘차게 외쳤다.
“아멘!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이사벨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파스타를 가득 담아갔다. 이사벨은 서스럼없이 냅킨을 쓰며 식사를 시작했다. 포크와 숟가락을 쓰는 데에도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반은 포크를 쥐고 뭔가를 하는 데에도 낯설어 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본 어머니는 조용히 이반 곁으로 다가왔다. 이반은 흠칫 놀라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어머니는 푸근한 미소와 함께 포크를 잡은 이반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이반? 포크로 파스타는 이렇게, 그렇지,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란다.”
그녀는 이반의 손을 움직여주며 파스타 막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이사벨은 그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봤다. 한때 이사벨도 포크를 제대로 쓰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식사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곁에 와서 이반에게 하듯 똑같이 알려주곤 했었다. 이사벨이 잘하게 될 때까지 어머니는 화를 내거나 답답해하지 않았다. 그저 알려주고, 교정해주면서 그녀가 잘할 때까지 기다렸었다. 지금 어머니의 모습은 그녀의 추억 그대로였다.
푸근하고 평화로웠던 집. 이사벨이 원했던 모든 것이 돌아왔다. 슬쩍 본 이반은 살짝 어색해 보였지만, 이사벨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만간 이반도 이 따스함에 물들어갈게 분명했다.
‘마녀의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진실이었어. 진실! 그 사람이 내 소문을 들어준게 분명해. 숲에 들어가길 정말 잘 했어, 이사벨.’
이사벨은 스테이크 한 조각을 씹으면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식탁을 내리쬐는 등불도 마냥 따스했다. 그녀가 식탁 위 주황빛을 그냥 바라보고 있자 아버지가 그녀에게 말을 건네왔다.
“이사벨. 학교는 오늘 어땠니? 수업 들으면서 뭐 재밌는 일 있었니?”
“아! 그게 말이죠! 오늘 특강이 있었는데요, 경찰이 오셨거든요! 맞다! 그런데 레일라 아빠도 같은 경찰이었더라고요.”
그녀의 친구, 레일라. 이사벨은 말을 하다가 잠깐 이를 멈춰 그녀를 생각했다. 숲에 나오고 그녀가 한 말이 거슬려서 벌컥 화를 냈지만, 여전히 이사벨은 그녀의 친구였다. 이사벨은 아직도 그녀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 비록 레일라가 그때 한 말은 기분에 좋지 않았지만, 이사벨의 마음에는 미안한 감정이 울컥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지금 이사벨의 관심은 바로 앞, 아버지에게 쏠려있었다.
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그 뒤를 물었다.
“경찰관이 어떤 강의를 했니? 이사벨. 막 강도를 잡는, 그런 이야기도 해주고 그랬니?”
험준한 시간을 거쳐서 다시 받아보는 아버지의 관심. 이사벨은 신나게 포크 드는 것도 잊고 특강 얘기를 시작했다. 하하호호. 웃음꽃이 핀다는 표현이 정말 적절한 순간이었다. 이사벨에게 지금 이 순간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스토리텔러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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