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흰 사자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나무 위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마주하고 보니 사자의 몸채는 정말로 거대했다. 게다가 새하얀 온몸은 정말로 신기했다. 나는 무심코 갈기 쪽으로 손을 뻗어봤다. 그러나 사자는 고고하게 몸을 틀어 내 손길을 피했다. 그는 내 주변을 돌며 말했다.
“말을 하는 사자는 처음 보느냐?”
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사자는 싱긋 웃고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전혀 묵직하지 않고 날쌘 도약이었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서 사자가 있는 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갔다.
“그러면 네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마녀’야?”
“마녀? 소원을?”
그러다 사자는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그런 전승으로 퍼졌는가? 너희들은 언제나 날 즐겁게 해주는구나. 인간 아이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소원을 모, 못 들어준단 얘기야? 사자야?”
사자는 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는 몸을 숙여 나를 더 가깝게 내려다봤다. 그러자 그의 붉은 눈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이 숲에는 마녀만 있는게 아니란다. 나 같은 사자도 있는 법이지. 소원은 그 마녀만 들어줄 수 있는게 아니지만, 그게 어떤 소원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나는 더 앞으로 나서서 사자에게 다가갔다. 동물원에서 보던 사자들과는 색이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친숙함이 느껴졌다. 사자의 눈빛을 보면 뭔가 내 마음을 잘 읽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심지어 그게 이사벨 누나라고 해도!) 내 마음속 비밀들을 다 털어놓았다.
사자는 조용히 내 말을 듣기만 했다. 지금껏 내 말을 온전히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늘 술에 미쳐서 날 때리기에 바빴고,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누나는 내 마음, 생각보다 자신의 것을 강요하고는 했다. 색깔은 상관이 없었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뭐가 중요할까.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그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소소한 꿈들까지도 다 사자에게 들려주었다.
“넌 이름이 있니? 아버지는 내게 이반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단 한 번도 날 ‘이반’이라고 불러준 적이 없어. 언제나 ‘야’ 아니면 ‘이 자식’이었지. 늘 벨트로 나를......”
스토리텔러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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