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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숲 #15. 마녀의 온실






문득 휑한 바람이 불었다. 잠잠하던 와중에 바람이 들이닥치고,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 따끔거리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바람이 내 귀마저 어떻게 한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온갖 잡음이 달아난 것만 같은, 일순간 느껴진 낯선 감각에 난 황급히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전면이 유리창으로 이뤄진 온실은 갑자기 나타났다. 순간 뒷걸음질 치며 달아나고 싶었지만 발을 움직이기 전에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마녀! 마녀가 저기에 있을지도 몰라. 이런 숲에 저런 유리 온실이라니! 분명 마녀가 마술로 자기 집을 만든 게 틀림없어!’


공포를 확신으로 억눌렀다. 그리고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 온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화원에는 온갖 식물들이 살고 있었다. 이 숲에서는 본 적 없는 식물들이었다. 또 온갖 동물과 새 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바깥에서는 들리지 소리였다. 숲에서 동물 소리 같은 잡음이 들리지 않던 이유는 이 온실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온실 안에는 식물과 동물들의 그림자만 보일 뿐, 마녀는 보이지 않았다. 마녀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발소리를 죽이려 살금살금 옆으로 걸었다. 이미 집과는 멀어졌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웠다. 나는 온실 문까지 걸어갔다. 문고리를 돌리는 간단한 일에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몇 번을 돌려봐도 잠겨있는지 문고리가 시원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문이 잠겼다고? 이대로 마녀도… 소원도 못 이루고 가는 거야? 누나들은 이 안에 없는 걸까?’


그때 뒤에서 열쇠를 든 가녀리고 흰 손이 고요하게 나타났다. 손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확하게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철크덕!


나는 뒤를 돌아봤다. 이 행동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손의 주인, 내 뒤에 나타난 사람은 아까 내가 본 여인이었다. 그녀가 분명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 들어오렴.”


그녀는 손짓했다. 나는 그녀의 손짓에 따라 온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밖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온실에는 숲에선 보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식물들로 가득했다. 나무들의 길이와 두께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떤 나무는 내가 쉽게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얇았다면, 또 어떤 나무는 어른들이 껴안아도 안 될 것 같은 굵기를 갖고 있었다. 어느 나무의 잎은 바늘처럼 뾰족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다른 나무의 이파리를 보면 넓적하고 둥글었다. 윤기가 나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나는 신기함과 경이로움에 가득 차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내게 작은 두 마리의 새를 보여주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올라가 있는 새들은 다르면서도 묘하게 같았다. 왼쪽 새는 부리도 뭉툭하고 머리 위에 깃대가 작았고, 오른쪽 새는 뾰족한 부리와 깃대를 갖고 있었다. 또 색깔도 서로 달라서 자칫하면 다른 종으로 알아볼 것만 같았다.


또 다른 새가 그녀의 반대 손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그 새도 내 앞으로 내밀어 자세히 보여주었다. 세 번째 새는 모든 게 두껍고 둥글었다. 부리도, 발톱도, 덩치도 다른 두 새에 비해 훨씬 컸다. 자칫하면 다른 두 새를 내쫓을 만큼 위압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새들을 만지려 손을 뻗었으나 새들이 날아 가버리는 바람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작게 웃고는 무릎을 꿇어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곳에 사람이 올 일은 적은데 용케도 찾아왔구나. 아가야, 네 이름은 뭐니?”


내 이름? 그제야 난 정신을 차렸다. 온실 속 신비로운 것들로 인해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차마 그녀를 똑바로 보면서 말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녀를 얼핏얼핏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반이에요.”


“그렇구나. 이반.”


그녀를 똑바로 보지 않아도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사벨 누나와 레일라 누나가 여기에 있, 혹시 잡아 먹었…”


그러자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애들이라면 잘 찾아서 올 거란다. 이반. 누나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보단 너도 바라는 게 있어서 내게 온 것 아니니?”


“네? 그러면 누나가 정말 소원을 이뤄주는… 마녀인가요?”


“마녀는 아니지. 하지만, 소원을 이뤄줄 수는 있단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정말 달콤하게 들렸다.








스토리텔러 - 김영진,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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