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를 한 그림자가 내 앞에 스쳐지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심조심 걷던 나는 황급하게 달리며 외쳤다.
“누나! 이사벨 누나!”
그러나 그림자는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무릎에 손을 얹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분명히 이사벨 누나만큼 긴 길이였다.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걸까?’
눈물이 났다.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지만, 나는 그림자가 있었던 곳으로 걸어갔다. 높게 뻗은 나무를 잡으면서, 앞으로 뻗은 발을 더듬거리면서 말이다. 그 사이에 내 눈앞에 또 그림자가 나타났다. 아니, 이번에는 그림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림자의 주인은 다 큰 여자였다.
정말 이사벨 누나의 말이 맞았던 걸까? 난 반신반의하며 여자가 사라진 쪽으로 걸어갔다. 아까 본 것처럼 여자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누나들도 마녀를 찾으러 갔으니 어쩌면 마녀의 집에 누나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잠깐만. 그런데 보통 동화에 나오는 마녀들은 아이를 잡아먹거나 요술을 부려서 개구리로 만드는데. 설마 누나들이 그렇게 됐으면 어떡하지? 저 마녀가 나를 잡아먹으면?
막상 마녀를 보니 나는 없던 걱정이 들었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는 과자로 집을 꾸며놓고는 포동포동 살 찌우게 한 다음 그 남매를 잡아먹으려 하지 않았던가! 나는 더 걸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멍청이! 그러면 소원을 들어준단 소문이 왜 낫겠니?’
“뭐? 뭐?”
‘돌아온 사람들 있으니 그런 소문이 난 것 아니겠냔 말이야. 바보야.’
“그, 그런가?”
‘당연하지! 저 마녀가 사람을 잡아먹었으면, 그런 소문이 날 일이 없지. 멍청아.’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돌아온 사람이 있으니 소문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미지의 목소리는 내가 답답했는지 화를 내며 외쳤다.
‘그냥 빨리 가! 네녀석이 바라는 소원을 들어줄 사람이 저기 있잖아. 행복한 가족을 원하지 않는 거야? 가서 가족도 찾고, 누나도 찾아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행복한 가족. 나 또한 누나처럼 그 소원을 빌기 위해 숲에 들어왔다. 비록 같이 온 누나들과 떨어지기는 했지만, 누가 먼저 오든 ‘행복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면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누나들도 찾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면 되는 일 아닌가.
나는 목소리가 말한대로 마녀가 사라진 곳을 향해 나아갔다. 나무들 사이로 흐르던 안개는 어느새 옅어져 아까보다 시야가 더 선명해졌다. 앞이 더 잘 보이게 되자 나는 더 과감하게 발을 내딛었다. 심지어 전보다 동물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잔잔한 숲과 그곳을 헤치며 나아가는 내 걸음소리만 들렸다.
스토리텔러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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