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이반 남매는 그렇게 다시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돌아왔다. 숲으로 간 것도, 벨라라는 마녀를 만난 것도 한낮의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 그녀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줬을까? 남매는 서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의문을 가졌지만, 속 터놓고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왠지 모르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하기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숲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뭔가를 감추는 사이가 아녔는데, 그들은 숲에서 나온 뒤로 서로에게 조금씩 거리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사벨은 여전히 이반에게 온정 넘치는 누나였다. 어둡고 음침한 숲에서 나온 그들의 모습은 정말 꼬질꼬질했다. 레일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못 보았다고 주장했다.
“내 말이 맞지? 이사벨. 이반. 세상에 마녀 같은 것은 없어. 소원을 들어주는 신은 교회에나 있다고.”
여전히 그녀는 숲과 그 소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레일라는 짐짓 어른 흉내를 내면서 남매의 행동, 특히 이사벨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짚어주었다. 이사벨은 얼굴을 점점 찌푸렸다. 그녀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외쳤다.
“알아! 나도 그냥 혹시나 해서 가본 거야. 어른 없이 가면 위험한 거, 누가 몰라서 그래?”
“그러면 가지 말았어야지! 괜히 가서는 이반도 더러워지고, 서로 헤어져서 위험할 뻔 했잖아? 조난 당하면 어떻게 집에 오려고 그래?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
그러자 그저 좁혀지기만 하던 이사벨의 미간이 이제는 확 구겨졌고, 그녀는 친구를 향해 크게 성화를 내었다. 갑작스러운 분노에 레일라는 당황스럽다는 듯 그저 듣기만 했다. 레일라는 그녀에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끄러워! 자꾸 뭔가 안다는 듯이 말하지마! 우리집에 대해서 네가 뭘 안다고! 너처럼 잘 사는 애가 뭘 알겠니? 어? 엄마, 아빠가 걱정? 계속 세상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말란 말이야!”
“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저 숲에 들어갔는지 넌 하나도 모르잖아.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 우리 엄마가 어떤지 네가 겪어봤어? 모르면 말하지 말라고! 자꾸 아는 체 하지 말란 말이야!”
레일라의 표정은 어느 하나의 감정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미묘하게 일그러진 얼굴 근육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담긴 눈빛, 수평을 잃어버린 입술. 그녀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못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만 같았다.
이반은 둘의 싸움에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사벨의 손을 꼭 잡았다. 이사벨은 조용히 자신의 동생을 쳐다봤다. 얼굴에 거뭇거뭇한 것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얼굴만 아니었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화내던 그녀는 몸을 틀어 무릎을 꿇더니 동생의 몸을 털어주었다.
“이사벨. 나는 그냥 걱정이 되어서 그런 말을.......”
“그러면 그냥 하지 말아줘, 레일라.”
이사벨은 친구를 보지 않은 채 아주 차갑게 말을 뱉었다. 레일라는 입을 꾹 닫았다. 이사벨은 묵묵히 이반의 등에 묻은 낙엽과 흙더미를 털어주었다.
“누나. 다 됐어?”
“이제 깨끗해, 이반. 누나 때문에 이런 일 하게 해서 미안해.”
“난 괜찮아, 누나. 나 그것보다 마녀 본 것 같아!”
그 말에 이사벨과 레일라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이반을 쳐다봤다. 이반은 속절없이 자신이 본 것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정말 커다란 온실이었어! 안에 들어가니 꽃들도 엄청 많고, 못 보던 나무들도 많았고. 게다가 막 서로 같은데 다른 새들도 보여주고 그랬어, 마녀가. 난 누나 말 믿었어. 내 소원도 들어주겠다고 했고, 누나가 있는 곳까지 알려줬어. 그러니까, 그니까 화 내지마. 누나. 응?”
이사벨은 이반을 있는 힘을 다해 껴안아줬다. 이반은 몸이 으스러질 것만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그의 앞에는 무척 충격을 받은 레일라만 보였다.
“그래, 내 동생. 화내서 누나가 미안해. 소리쳐서 많이 놀랐지?”
“아니야! 괜찮아, 누나. 난 정말 괜찮아.....”
“사실 누나도 봤어. 정말 누나도 이반인 본 것처럼 똑같이 마녀를 봤어. 온실도 봤고, 그 안에 있는 꽃과 나무들도. 그러니까 난 이반이 뭘 말해도 다 믿어.”
“고마워, 누나....”
그렇게 이사벨과 이반은 숲을 벗어나 그들의 마을, 집으로 돌아갔다. 레일라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친구의 뒷모습을 보기만 했다. 그녀는 도저히 저런 미신에 매달리는 친구가 이해되지 않았다.
“흥! 세상에 소원을 들어주는 마녀는 정말 없단 말이야. 그런건 다 동화책에나 있는 얘기잖아.”
레일라는 갑자기 심술이 나서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를 걷어찼다. 돌맹이가 날아간 곳에는 여우가 있었다. 여우는 끼잉 끼잉 거리면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뭘 봐! 저리 안 가!”
애꿎은 여우를 향해 고함을 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레일라는 콧방귀를 뀌면서 이사벨이 걸어간 곳과는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도심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레일라는 집으로 가는 내내 입술을 꾹 닫고서 잠에 들 때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속으로 계속 이런 말만 되뇌였을 뿐이었다.
‘마녀는 없어! 동화 같은 얘기에 속는 바보 이사벨!’
스토리텔러 - 김영진,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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