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과 이반은 집 앞에 섰다. 이사벨은 펜스에 붙은 주소지 표기를 봤다. 분명히 남매가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이 맞았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집이 너무나도 깔끔했다. 마치 새로 산 집처럼.
이사벨은 이반을 쳐다봤다. 이반도 남의 집 보듯이 보는 것만 같았다.
“여기 우리집 맞아? 누나?”
이사벨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문을 밀었다. 문이 조용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문과 펜스를 연결시켜주는 경칩은 새 것처럼 매끈거렸다. 녹도 슬지 않았고 기름칠도 잘 되어 있었다. 이사벨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고개를 조금만 틀어 본 작은 정원에는 작은 모래사장과 둘이서 늘 놀던 장난감들이 굴러다녔다.
“응. 이반. 우리집이야.”
하지만 이반은 우물쭈물하며 문간을 쉽게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벨은 손을 내밀어서 이반이 스스로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이반이 오지 않으려고 하자 그녀는 억지로 동생의 손을 잡아 집안으로 데리고 갔다.
조용했다. 거실도, 다용도실도, 주방도, 욕실도. 모든 곳이 너무나 조용했다. 앵간해서는 켜져있는 텔레비전도 무슨 일인지 꺼져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빠가 소파에 널부러져서 농구나 슈퍼볼 대회를 보고 있었을 텐데. 대체 어디에 계시지? 어디라도 가셨나, 엄마랑?’
“엄마? 어디 계세요? 엄마!”
이반은 이사벨의 뒤에 숨어버렸다. 이사벨은 천천히 다용도실로 걸어갔다. 그곳엔 늘 엄마가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힘차게 문을 열었다.
“으악!”
겁에 질린 이반은 외마디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공허하게 남겨졌다. 다용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이반. 왜 겁을 먹어, 남자애가. 좀 당당하게 있으란 말이야. 우리 집인데. 너 마녀를 봤다면서.”
“으, 응.”
“마녀한테 무슨 소원을 빌었어?”
“아, 그거는......”
이반은 마녀에게 말했던 소원을 들려줬다. 이사벨은 싱겁다는 듯이 이반의 등을 토닥거렸다.
“별 거 아니었잖아, 이반. 나도 비슷한걸 빌었는데. 그럼 잘 된 거 아니야?”
“그, 그럴까? 누나? 나 너무 불안해.”
“쓸데없는 고민이야. 이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어! 그런 숲에 사는 사람은 분명히 마녀야.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녀. 그 마녀가 알려준 길을 가니까 바로 마을이 나왔잖아?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마녀뿐이야.”
이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은 이반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집이야, 이반.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집이야. 그러니까 겁 먹지마. 우리 마녀 봤었잖아! 우리가 원하던 집에 온 거라고.”
이사벨은 동생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갔다. 윗층으로 올라가는 와중에도 늘 귀신처럼 소리가 나던 나무계단은 아까 문처럼 조용했다. 누군가 매일 꾸준하게 손을 본 것 같았다. 한 계단씩 올라가면서 이사벨도 주변을 경계했다. 확실히 그녀가 알던 ‘우리집’과는 달랐다.
“엄마? 아빠? 거기 계세요?”
이반은 이제 매미인 듯 그녀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반은 계속 비명을 지르며 이사벨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2층에 올라가서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2층 이반의 방에 새로운 장난감들, 목마가 있었다. 그리고 이사벨의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심지어 창가에는 하늘하늘거리는 커텐도 걸려있었다.
‘이게 진짜 뭐야? 정말 마녀가 우리 소원을 들어준게 분명해! 내 예전 방이잖아!’
이반이 태어나기 전, 집안이 불운해지기 전에 보던 그녀의 방이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서 모든 가구들이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이반도 어리둥절해하며 자기 방에 있는 장난감을 들었다. 장난감 칼이나 군인인형들, 목마도 모두 남의 손을 타지 않은 새 것이었다. 칼에는 어디 이가 나간 곳이 없었고, 인형들은 부러진 팔다리 없이 색칠도 깨끗했다. 목마도 때가 타지 않은 새 상품이었다. 이반은 냉큼 그 위에 올라가 목마를 탔다.
“우헤헤! 와! 너무 신난다아! 누나! 나 좀 봐봐!”
이반은 장난감 칼을 들면서 외쳤다.
“나는 멋있는 기사다! 저 괴물을 물리치러 가자! 으럇! 으럇!”
이사벨은 웃으면서 이반의 놀이에 장단을 맞춰줬다. 그녀는 괴물이 되어 이반의 칼에 맞아 죽는 시늉을 하거나 공주가 되어서 이반 기사의 호위를 받기도 했다. 새 칼과 망토를 걸친 이반에겐 아까 느껴졌던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장난감에 혼이 팔려 신나게 노는 아홉살이었다.
‘그래야 아홉살 내 동생 답네.’
이사벨은 내심 웃으며 괴물 용이 되었다. 이반은 칼을 휘둘러 괴물 용을 처치했다. 이사벨은 완전히 역할에 몰입해 기사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럴수록 이반은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그렇게 둘이서 한창 놀다가 1층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사벨! 어디에 있니! 이반!”
아버지였다. 흔들림 없이 또렷하게 남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신나게 놀았던 이반은 칼을 품에 껴안고 떨었다. 위기를 인지한 이사벨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조용히 해, 이반. 혹시 모르면 바로 집밖으로 도망치고.”
“누, 누나는 어떻게 하려고!” 이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가 막 때리는거 아니야? 나, 나랑 같이 가! 내가 막아줄게.”
“뭘 막는다고 그래, 바보야. 나보다 더 약하면서. 시끄러워. 내가 먼저 내려갈게.”
이사벨은 공포에 떠는 이반을 진정시키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이반은 두 귀를 막고 방구석에 쪼그려앉았다. 몇 초 정도 지나면 아마 누나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반은 그걸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왜 그러지?”
이반은 조금씩 밖으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갑자기 이사벨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반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전혀 믿기지 않았다. 집에서 이반은 누나의 웃음을 본 적은 드물었다. 너무나도 낯선 조합이었다. 늘 폭력만 있던 집에서 본 누나의 밝은 미소. 이사벨은 이반의 손을 잡고 무작정 아랫층으로 끌고갔다. 현관 앞에는 지금껏 이반이 보지 못했던 풍경이 있었다.
“잘 놀았니? 우리 아들?”
이반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정확히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을 껴안고 번쩍 든 것이었다.
“아? 아빠?”
매끈한 턱과 잘 정돈된 머리카락, 그리고 셔츠에서 풍겨오는 향수. 그가 처음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더 놀란 것은 그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어머니였다. 눈이 풀리지도 않았으며, 두 다리로 제대로 서있는 그녀. 그녀는 식료품을 가득 담은 종이봉투를 안고 있었다.
“여보! 이제 내려놔요. 그리고 짐 정리하는 것 좀 와서 도와줘요. 이반! 아버지 힘들게 하지 말고, 누나랑 가서 숙제나 하렴!”
“네! 엄마!”
이사벨은 아버지에게서 이반을 받았다. 아직도 이반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달라진 부모님을 지켜봤다. 식료품을 냉장고나 벽장에 정리하고, 그러다가 간간히 애정표현을 하는 부모님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심지어 이반이 보기엔 아버지의 얼굴도 뭔가 좀 달라보였다. 그러나 누나인 이사벨은 그저 흐뭇하게 이를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원하던 우리집이야. 이반, 너도 기쁘지?”
이반은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반은 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기뻐, 누나.”
스토리텔러 - 김영진,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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