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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의 숲 #35. 싸늘한 이유







두 남매는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문에 잠시 긴장했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현관문을 열었다. 집은 여전히 어두웠고 싸늘했다. 이사벨은 이상하게 추운 계절이 아닐 때도 집은 늘 추웠다고 생각하며 어두운 복도를 지나 거실로 향했다. 이반은 이사벨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누나, 집이… 너무 조용해.”


먼저 이상함을 느낀 건 이반이었다. 평소라면 티비가 켜져 있어서 쉼 없이 떠드는 소리와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어울렸어야 하는 집이 아무런 소리 없이 고요하기만 해 어색한 기분이 든 이반은 이사벨의 옷자락을 꼬옥 쥐었다. 이사벨도 덩달아 긴장하며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거실로 다가갔다.


아버지는 거실에 있었다. 소파에 앉아 허공을 노려보며 술을 병째로 들이키고 있었다. 이반과 이사벨은 늘 보던 모습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소원을 빌었는데 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지 의아했다. 올바르게 실현되지 않은 걸까? 둘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보다가 거실로 한 걸음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남매는 그 이후로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평소보다 더 서늘하고 조용한 이유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거실은 엉망이었다. 쓰러져있는 가구와 엉망으로 널려있는 물건들.


그리고 소파 아래 창백하게 질려있는 손.


빼빼 말라 뼈마디가 두드러진, 남매에게는 매우 익숙한 손이었다. 저 손은 늘 알 수 없는 가루들을 들이켰고 알록달록한 알약을 집어 먹었다. 어머니의 손이 거실 바닥에 물건들과 함께 놓여있었다. 소파에 가려진 엄마는 저 손처럼 창백할까? 이사벨은 순간 스쳐 간 생각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내저었다.


남매는 서로의 손을 더 꼬옥 잡았다. 아버지에게로 더 다가갔다. 다가가면 갈수록 어딘가 비릿한 냄새가 풍기더니 점차 강해졌다. 생선의 비린내와는 그 결이 다른, 쇠 비린내가 온 거실에 퍼져있었다. 그리고 그 비린내는 아버지의 발치에서, 창백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에게서 풍겨왔다.


거실 바닥에는 붉은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발치에 피 웅덩이가 크게 고여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병만 비울 뿐이었다.


악마의 장난인가. 아버지의 얼굴과 옷에는 핏자국이 남아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알려주고 있었다. 두 쌍의 여린 눈이 바쁘게 움직이며 거실 곳곳을 살폈다. 어머니의 모습은 언젠가 보았던 흡혈귀 같았다. 흡혈귀를 죽인 악마, 흡혈귀는 어머니의 살가죽을 쓰고 있다가 악마의 손에 죽고 가죽만 남긴 것 같았다.


이사벨은 코끝에 맴도는 비릿한 냄새와 창백해진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구토가 치밀어올랐다. 어린 이반의 눈을 가려줘야 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 음식물을 모두 게워냈다.


“우욱, 우웨엑-!”


요란한 소리에 아버지가 고개를 돌렸고 이반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속을 비우느라 아버지의 시선을 자각하지 못한 이사벨은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텅 빈 눈을 할 뿐이었다. 이반은 아버지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기 시작했다.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흘러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끼는 이반이었다.


아버지는 두 어린아이가 거슬렸다. 이반은 덜덜 떨고 이사벨은 구토 후 넋을 놓았다. 술에 찌들어 사고가 정지된 아버지는 남매에게로 비틀거리며 다가가다가 걸어가는 길에 발에 거슬리는 시체는 발로 차 밀어내고 이반은 다가오는 아버지를 피해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넋을 놓고 있던 이사벨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던 이반은 아버지의 눈빛에 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누, 누나…! 정신 차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단 생각에 이반은 다가오는 아버지를 향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식칼을 들어다 겨누었다. 이반이 든 칼은 이미 붉은 피로 물든 채였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찌른 칼. 이반의 손이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 없는 노릇. 이반은 이사벨을 뒤에 두고 아버지와 대적했다.


“푸후…”


아버지는 이반의 손에 들린 칼이 보이지 않은 것처럼 술 내음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계속해서 다가왔다. 이반은 다가오는 아버지가 마치, 너같이 작은 애가 과연 나를 거역할 수 있을까? 하고 비웃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칼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스토리텔러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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