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정문 앞에 못 보던 차가 섰다. 은빛으로 광이 나는 벤츠 문양이 보닛 앞에 있었다. 샛노란 스쿨버스에 있는 버스기사와 아이들은 모두 신기해하며 그 차를 살펴봤다. 문외한이 보아도 그 차는 새로 뽑은 것이 분명했다.
단 하나의 흠집도 없는 짙푸른 벤츠. 종종 부모님이 자가용을 끌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학교 앞에 서는 차들은 꽤 있었지만 이런 이목을 끌 만큼 썩 대단한 것들은 아녔다. 그 차들은 다들 썬팅이 약하게 되어 있어서 차 안이 훤히 잘 보였고, 세차를 했어도 그동안 달린 거리를 증명하는 땟국물이 묻어있었다. 심지어 어떤 차는 뒷쪽의 범퍼가 반쯤 주저앉은 채로 오기도 했다. 그런 차들은 아이들에게 별 매력을 주지 못했고, 심드렁하게 장애물 취급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온 차는 평소에 봐오던 것들과 차원이 달랐다. 심지어 짙은 썬팅으로 안에 누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차문이 열리자 아이들은 일제히 누가 내리는지 쳐다봤다. 그리고 스쿨버스에 있는 빈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빈 자리는 딱 두 개였다. 그리고 다시 벤츠에 내린 주인공들을 쳐다봤다.
“이사벨하고 이반이?”
이반은 여전히 쭈뼛거렸지만, 이사벨은 크게 팔을 흔들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는 굳이 조수석 쪽까지 몸을 내밀며 화답했다.
“나도 사랑한단다, 이사벨. 이반? 이반은?”
“다, 다녀오겠습니다!”
이반은 곧장 학교 안으로 도망치듯 달렸다.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들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사벨은 오래 아버지와 인사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사물함 앞에 서서 교과서들을 챙겼다. 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옆으로 돌려봤다. 그녀의 옆에는 가장 친한 친구, 레일라가 있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레일라는 짐짓 당황해하더니 사물함 문을 쾅 닫고는 복도 저편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뭐야. 이제 나랑 말도 하기 싫다 이건가? 흥.’
이사벨도 사물함을 똑같이 큰 소리 나게 닫았다. 그녀는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채 잰걸음으로 다른 교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종종 마주친 레일라를 못 본 채 하려 했다. 설사 서로의 눈빛이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이사벨은 들으라는 듯 아주 크게 “흥!” 소리를 내며 지나치곤 했다.
오후가 다 넘어가고 수업이 다 끝날 무렵, 어느 아이가 이사벨에게 다가왔다.
“야, 이사벨. 너 오스왈드 선생님이 좀 오시래.”
“오스왈드 선생님이?
“교무실로, 말할게 좀 있다고 하시던데. 가방 챙겨서 오래.”
“알았어.”
이사벨은 가방을 챙기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스왈드 선생은 그녀의 담임선생이었다. 그녀가 이사벨을 교무실로 따로 부를 때는 두 가지 경우에 한해서였다. 주기적으로 하는 면담시간 아니면 어떤 아이와 싸우는 등 큰일을 벌였을 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도 오늘은 전혀 그런 날이 아니었다. 그녀는 천천히 교무실로 걷다가 한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반!’
그녀는 아까와는 다른 보폭으로 복도를 걸었다. 바로 앞에 선 교무실 문 너머에는 살짝 격양된 소음이 들렸다. 이사벨은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문을 열었다. 그 너머에는 고개를 숙인 이반과 오스왈드 선생이 있었다.
“누나......”
그녀를 발견한 오스왈드 선생은 매우 곤란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리 오렴, 이사벨.”
이사벨은 천천히 교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돌리니 얼굴에 울긋불긋 멍이 든, 다른 아이가 있었다. 이사벨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이반을 흘겨봤다. 오스왈드 선생은 다른 쪽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는 레일라도 있었다.
‘레일라가 여기에 왜?’
“이반이랑 짐이 싸우는 와중에 레일라가 말리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반이 레일라도....... 그래서 너도 오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이사벨. 차분히 누나로서 이반을 달래보겠니?”
“네, 선생님.”
그녀는 이반 앞으로 다가갔다. 이반은 씩씩거리며 짐을 노려봤다. 이사벨은 이반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물었다.
“대체 왜 싸웠니? 이반. 레일라는 왜 또 여기에 있고?”
이반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사벨은 몇 번을 다시 물었고, 그제야 이반은 싸운 이유를 설명했다. 이유의 중심에는 바로 이사벨이 있었다.
스토리텔러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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