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따라 달려가는 와중에도 나무에 흔적 남기기는 멈추지 않았다. 숨이 차 가슴이 아파 왔지만, 다행히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얼마 남지 않았어. 빨리 애들을 만나서 돌아가야지. 돌아가면 두 번 다시 이 숲에 들어올 일은 없을 거야.
한참 안개 속에서 수풀을 해치고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나무 그루터기가 있는 작은 공터가 나왔다. 이 숲은 정말 알 수가 없다. 갑자기 공터는 왜 나오는 걸까. 잠시 의문이 들었다. 의아함에 나무 그루터기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간 그루터기는 꽤 커서 두어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애들이 여기 있다가 나를 찾겠다고 이동했나? 그러고 보니 공터로 나오니까 안개가 사라졌다. 어디서 작은 바람이 불다가 때마침 안개를 걷어간 것 같았다. 안개가 물러나면 다행이지. 다시 목소리에 집중하자.
". . . . . . . . . . . . ."
그러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온전한 적막만 흐를 뿐이다.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뭐지? 이 숲은 정말 미스터리 그 자체다. 다시 길을 찾으러 뒤돌아서는데.
“안녕, 꼬마 아가씨?”
웬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불꽃같이 타는 듯한 빨간 머리에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 눈동자가 매력적인, 숲보다는 시상식의 레드카펫 위가 더 어울릴 것처럼 화려한 얼굴의 여자였다. 목소리도 가수처럼 아름다워서 순간 그녀의 인사를 들은 게 헛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여자의 아름다움에 홀리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 차리자. 저 이쁜 얼굴에 저 초록색 망토… 아무리 봐도 차림이 너무 수상했다.
“이 숲에는 왜 왔지?”
“친구 따라서요. 소문을 들었거든요. 언니도 소원 빌러 왔어요?”
경계심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말을 이어갔다. 어른이니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저, 실은 친구들과 떨어졌는데 혹시 제 또래 여자애랑 작은 남자애 보셨어요?”
“글쎄, 봤다면 봤고 안 봤다면 안 봤는데? 알고 싶어? 애들과 만나는 게 너의 소원이니?”
어이가 없다. 놀리려는 건가? 갑자기 소원 타령하는 것도 그렇고 본 거면 본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말을 꼬는지 참 알 수가 없다. 어른은 역시 자기 멋대로인 것 같다.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렸다.
“알려주지 않으실 거라면 됐어요. 혼자 찾을게요.”
괜히 시간만 날린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러다 해가 지면 진짜 큰일 나는데. 얘들은 정말 어디 있는 걸까. 아까 온 길을 되짚어 가볼까 하는 생각에 수풀을 헤치는데 여전히 공터에 서 있는 여자가 걸렸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아까 지었던 미소를 그대로 보여주며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 해가 지는 중이니까 언니도 빨리 집에 가세요.”
“어머, 날 걱정해주는 거니? 기특해라.”
기특하기는 무슨, 역시 빨리 숲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다. 저런 이상한 사람이 또 이 숲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스토리텔러 -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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